"미산 소고기의 수입조치로 인한 문제 발생시 통상마찰의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반송조치하겠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다시 협상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근래 한우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다시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한국소도 안전하지 않은데, 미국소만 가지고 그려"
"일본과 같이 한우도 전수검사등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그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협정이 발효되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OIE 부회장이 직접 권고조항일 뿐이라고 한 것조차 강제적 성격이 있다고 해석한 정부의 말, 그리고 그와 같은 성격의 수없이 많은 거짓말들. 잘못된 협상임일 이제라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정부측인사가 '단한명의 희생자도 싫다' 라는 표현을 했다. 확율적 통계만을 논하는 한국정부인사들과는 크게 대비되는 점이어서 금일 방영된 PD수첩 관련 기사에 네티즌들의 반응중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점이다. 한우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축산업의 시스템 자체를 크게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의 관건은 당장 5월15일로 다가온 협정발효시간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중차대한 문제를 놔두고 물타기용 발언은 삼가 하는 것이 옳다."
차제에 검역과 유통 시스템을 크게 개선해야 하는 문제로 까지 이 사건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그러나 한우도 그런데 왜 미국소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물타기용 발언은 삼가하자.
"핵심은 다 드러났다. 더이상 괴담 운운하며 물타기할 그런 시점은 이미 지난지 오래다. 국민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차 있는데, 괴담 운운하는 언론사가 너무 많다."
대개의 수구언론들의 유형은 두가지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것은 여론을 원하는데로 이끄는데 주력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때는 여론이 향하는방향으로 재빠르게 선회하고 선두권을 유지한다"
"원하는 방향대로 여론이 흐리지 않을때는 사안별로 다르게 대처한다. 이번처럼 괴담이라는 단어를 주구장창 써가면서 물타기를 어느정도 지속적으로 제기하다보면 통하게 될 만한 사안인지 아닌지 현재 점유율선두권의 언론사들은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통하지 않을듯 여겨졌을때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모른척 계속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이를 수구언론끼리 약속한듯이 합심하여 통일된 행동을 보인다."
조*일보의 경우 발빠르게 움직이는 쪽이다. 항상 그래왔던것은 아니나 근래는 이러한 경향이 짙어졌다.
이제 주요 언론사들의 울타기용 발언은 줄어들고 시류의 흐름에 빠르게동참할 것으로 예측해본다.
그리고...
"재협상해야한다. 그리고 한국의 검역시스템 개선을 위한 국회 차원의 개정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가닥이 잡혔을때 협상을 진전시켜야 한다."
"일본과 같은 수준의 검역및 이력관리 시스템을 바로 만들어내고 시행하기는 어려운일이다. 수십마리의 광우병소가 발생하고 인간광우병 희생자까지 나온 일본과 우려만 있는 한국은 상황자체가 다르긴 하다. 그러나 이번 미국소고기수입협상이 그 물꼬를 터주었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결국은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까지 나아가는데는 시일이 필요할지는 모르나 어느정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는것이 옳고, 그럴 명분이 생겨버렸다."
자 해답은 있다.
첫째, "미안하다" 둘째, 우리도 좀 개선해보자 셋째, 합리적인 협상을 재개한다.
쉽다. 간단하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료조치 강화" "미 고급육생산업체가 자발적으로 전수검사 실시를 하겠다" 라고 한것을 미 농무부가 거절했다. 뒤가 구린게 삼척동자도 알아챌만한 내용이다.
"한국과 같은 수입국들이 위와 같은 양심업체에만 쏠린다면 이번 협상의 주요 로비주체인 미 거대 축산농가들의 미정부를 대상으로한 로비는 다 헛물킨 결과가 되어버리므로 전수검사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막은것" 이라는 해석외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국민일보의 기사는 이런 내용으로 물타기를 많이 합니다. 사설에서는 "감정이 이성을, 비이성이 과학을 압도하는 사회는 장래가 어둡다" 라고 까지 표현합니다.
근래 조중동과 국민일보의 보도행태는 늘 한결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생산하는 배경이 따로 있고, 그들의 선동하에 어린학생들이나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라는 것이조.
이러한 논점하에 사설도 쓰여지고 싣습니다.
백번양보해도 실천가능한 약속이 선행되고나서야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소고기 수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골육분사료금지조치가 이뤄졌다" 라는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 미국내 축산이 그렇게 되었는지 검증도 안되었거니와 근래 미국내에서 떠들썩한 사건들을 보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판단 할 수 있습니다.
<광우병 진원지 영국의 현황과 대책>
(런던=연합뉴스) 김진형 특파원 = 광우병의 진원지 영국은 광우병이 첫 발생한 지 20년이 넘도록 아직 광우병의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주의자인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인간이 대자연의 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받게 된 보복"이라 표현한 광우병으로 인해 영국은 수 백만 마리 소를 도축해야 했고,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도 지금까지 162명에 달한다.
정부 자문관이자 인간광우병 전문가인 존 컬린지 런던대(UCL) 교수는 지난해 광우병의 긴 잠복기로 볼 때 과거 수년간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은 결과로 영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가 대량 발병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과학자들은 100만명당 237건의 발병률에 근거해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섭취한 광우병 감염 쇠고기를 통해 영국인 인간광우병 환자가 1만4천명 정도 나올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광우병이 극성을 부린 1990년 5월 영국 농업부 장관 존 검머는 네 살짜리 딸과 함께 BBC에 출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햄버거를 먹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해 검머 친구의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광우병 논란을 다시 일으킨 바 있다.
일명 `광우병(狂牛病)'으로 불리는 우해면양뇌증(牛海綿樣腦症.BSE)은 1985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축산농가의 피해를 우려한 영국 정부는 1988년 6월에야 이 병을 신고대상 질병으로 지정하고, 7월에는 이 병에 감염된 소를 모두 도살하겠다고 발표했으며 1989년에는 소의 뇌와 척수, 비장, 편도선 등 모든 내장을 식용금지하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1996년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사람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다시 고조됐다. 영국 정부는 초기 늑장 대응으로 광우병 사태를 키운 셈이 됐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철저한 방역-보건 대책을 취하게 됐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을 막기 위해 우선적으로 육골분이 포함된 사료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를 도살하는 것은 물론 광우병에 걸린 암소가 낳은 송아지와 광우병 소와 함께 사육된 다른 소들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소의 뇌와 척수, 비장, 편도선 등 모든 내장을 식용 금지하는 처분은 이미 1989년 내렸다.
또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외과수술장비를 통해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영국은 1999년 이래 수혈용 혈액에서 감염경로가 될 가능성이 큰 백혈구를 제거했다. 혈액응고제 같은 의약품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혈장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보건부는 외과수술장비를 통한 감염을 막기 위해 이 장비들을 소독하는 데 2억파운드를 투자했다.
영국은 광우병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광우병의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덕에 이제 소비자들은 정부를 믿고 영국산 쇠고기를 안심하고 사먹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식당들이 싸구려 외국산 쇠고기를 들여다 영국산 쇠고기로 둔갑시켜 소비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언론의 논점은 왜곡돼었다. 안타까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 믿고 있다는 것이다.
PD수첩이 잠자던 넷심을 일깨운것은 맞다. 그것을 시청한 다수의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가 선동했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크게 문제가 있다.
그들은 또 이런 노조를 편다.
"포탈사이트는 자극적인 편집으로 네티즌들의 입맛에 맞추어가며 괴담을 부풀리는데 일조했다"
사실 그 반대다. 눌렀기 때문에 고무공이 튀듯 더 튀었다. 수많은 댓글의 삭제조치와 더불러 검색어 삭제조치가 있었다.
이후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진압을 한다는둥, 사법처리를 운운하니 이미 폭발해버린 넷심이 수그러들기는 커녕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는 PC수첩을 고발한다는 강경발표를 하였다.
이제는 시나리오가 훤히 보인다. 초중고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괴담을 생산한 특정세력의 음모로 돌리고, 그들의 시위가담을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며 사회각계층에게 부질없는 짓이니 말리지 않고 뭐하느냐는 식의 대응을 한다. 그리고 전문가랍시고 의사양반들 불러다가 진실이 어떠니 하면서 언론 플레이를 한다. 그리고 수입반대자들중 적극적인 이들 몇몇을 타겟삼아 강경대응한다.
탁 까놓고 말하면 지금 광우병 관련 전문가는 국내에 없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이것을 연구한 이들의수도 적거니와 검증된 논문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죄다 가설일뿐이다. 이것을 정부와여당은 일부 드러난 사실과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만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이야기 할뿐이다.
세상이 발표된 내용 그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편할까.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백번양보해도 미국의 강력한 예방책이 실천되어야만 믿을 수잇을 것이다. 입발린 소리는 듣기 싫단 말이다.
골육사료뿐 아니라 항생제 남용도 줄여야 하고, 도축과정에서의 위생관리도 철저히하여 미국내 시민들의 신뢰부터 회복하라. 그러면 얼마든지 적극 수입을 찬성해주겠다.
어떤 물타기 잘하는 인간들은 한국산 소고기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미국산소고기수입을 막고나서 할 말이다.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르나, 일단 현재 알고 있기로는 국내의 항생제 남용도 역시 만만치 않으며, 골육사료도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세계 각국이 그러하듯 점차 식물성 사료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있고, 그것은 국내에서 해결 해야 하는 국내 문제인 것이다.
국내문제가 아니라 외국의 문제이고 그것을 막기 조차 어렵다면 그것은 문제이지.
문제 발생시 재협상 요구하겠다?
쇼를 해라. 소파는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인데 이것에 매여서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이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최근 주미 한국주부들의 성명이 있엇다.
"네가지 등급의 소고기중 미국인들은 대부분 1,2 등급만을 소비한다. 4등급을 소비하기도하지만 그마저도 30개월 미만이다" "마트에서 원천적으로 막혀있고 법으로막혀있다. 30개월이상은 식품으로 실제 구매할 수조차 없다." 라고 했다.
거기다가 "한인회장이라는 사람들 일부 상인들만 모인곳이고 투표율이 5%정도일뿐이다 .잘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 이라고 했다. 한인회장이 미주 교포나 유학생을 대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말은 좀 다를것이다 좀전에 본 내용을 기억해서 적는것이니. 그러나 논조는 정확히 옮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중동과 싸웠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초중고와 싸움중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김연세 기자님의 용기와 숭고함을 표현할 수 없을테니 짧게 하겠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보호되어야 하고 정의는 높게 받들어져야 하며 청년들은 용기를 갖고 정의를 받들어야 합니다. 이 후에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지난 8일 오후 운영위원회를 열고 김연세 기자님에게 출입정지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켜줘야 합니다. 청와대 출입기자입니다. 아이들 지켜주세요. 진정한 한국인 김연세 기자 징계를 풀어달라 한나라당 신문들의..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그래서 순전히 궁금해서 찾아보고 알게 된 내용들입니다. 촛불 집회 그리고 이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아일보] 쇠고기 촛불시위는 '6월 민주항쟁'이 아니다 일부 단체와 언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를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에 비유하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의 구호가 ‘국민 건강 사수’로 바뀌었을 뿐.. [한겨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려는가 촛불집회로 드러난 민심의 분노가 임계..
마음먹고 팝 이야기를 적어 보려는데, 첫번째로 떠오르는건 역시 데비깁슨이었다.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는중 그녀에 대한 자료가 너무도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데비깁슨 그녀는 보통의 인기스타가 아니라 미국과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슈퍼스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내게 참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쩔 수 있나. 그나마 있는 자료도 전부 링크가 막혀 있어서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올릴 수 밖에..
처음 데비깁슨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6학년에서 중학교1학년으로 올라가더 그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게는 6살위의 형이 있는데, 같은 방을 쓰는 관계로 데비깁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카와이~귀여법
그녀는 특별했다. 당시 그녀는 어린 내게 환상이었다. 내가 중학생 시절 가장 즐겨들었던 앨범을 모두 꼽으라면 놓칠 수 없는 가장 최초의 음반이 그녀의 1,2집일 것이다.
스스로 자작곡을 하는 그녀는 천재로 알려졋고, 뛰어난 외모로 사랑 받았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보여주며 정말 말그대로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처음 음반을 직접 구매하게 된건 그녀가 아니었지만. (카펜터스와 사이먼앵가펑클이 처음이다)
뭐랄까 그녀의 인기를 당시에 청소년이었거나 팝을 즐겨 들었던 이가 아니라면 실감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인기는 그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미국과 세계각국의 반응에 비해 비교적 뜨겁다고 할 수 있는것이어서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쉽기만 하다.
1집의 큰 성공 이어서 2집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더 성숙해지고 더욱더 완성도 높게 나왔기에 지금도 2집을 더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집만큼의 큰 성공은 아니었다. 2집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지만 그녀의 음악은 아직도...아니 평생 잊지 못할듯 하다.
billboard singles chart
1987 - No.4 - Shake Your Love 1987 - No.4 - Only In My Dreams 1988 - No.22 - Staying Together 1988 - No.3 - Out Of The Blue 1988 - 2Weeks No.1 - Foolish Beat 1989 - No.71 - We Could Be Together 1989 - No.17 -No More Rhyme 1989 - 3Weeks No.1 - Lost In Your Eyes 1989 - No.11 - Electric Youth 1991 - No.26 - Anything Is Possible 1993 - No.86 Losin Myself
데뷔곡이었던 쉐이크유어핸드부터 좋았다.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 외에도 앨범의 전곡이 모두 좋았다.
물론 지금도 인기 있는 아웃오브더블루나 러스트인유어라이즈도 다 좋다.
데뷔당시 17살의 틴에이저였던 풍부하고 음량과 깔끔한 목소리로 뭇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6살에는 "Make sure you know your classroom" 이라는 곡과, 12살엔 "I come from America" 라는 곡을 썼다.
자료를 찾다 알게된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 현재는 데비깁슨이 아니라 데보라깁슨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한국에서만큼은 만이 잊혀진 상태인듯 하다 .그러나 그녀가 하이틴이던 시절 동시대의 하이틴들은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Lost In Your Eyes 이다. 그녀의 최고히트곡중 하나. 지금들어도 상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요점은 결국 미국민도 먹지 않는 소를 한국으로 떠다미는 걸 받아 먹는 한국이란 것. 이명박이 있는 한 결국 우린 이런 취급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 한숨만 나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는데 동의해주신 지인께 감사드립니다.) 미국사는 한국아줌마 : 서명도 한참 전에 했다는... 한국사는 한국아저씨 : 전 오늘 알았다는; 미국사는 한국아줌마 : 내가 요즘 한국만 보면 숨이 탁 막혀서.. 조기사망할 꺼 같다는거죠. 한국사는 한국아저씨..
하지만 7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달랐다. 이미 컬러TV는 기본이요 비디오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한국의 경제는 풍성해지고 있었던 탓에 한결 여유가 생기면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할리우드가 있었다.
* 천사들의 합창/케빈은 열두살/말괄량이 삐삐
천사들의 합창
히메나 선생님이 이렇게 변했다.
히메나 선생님은 말그대로 천사의 이미지였다. 아름다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학생들의 스토리와 맞물리어 당시 내가 청소년이었음에도 즐겨보았던 드라마였다. 이 작품은 미드는 아니었고 멕시코드라마였긴 하지만 외화라는 점과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놓칠 수 없는 드마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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