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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09 [프라이드 멤버노트] 고미 다카노리 by 미라파샤
  2. 2005/12/23 앤디훅 by 미라파샤
  3. 2005/12/23 K-1 의 한계 by 미라파샤
  4. 2005/11/30 k-1원의 전설 "앤디훅" by 미라파샤
고미 다카노리 (Gomi Takanori)


본명: 고미 다카노리

출생: 1978년 일본출생

체격: 173cm 73kg

소속: 키쿠치 레슬링 도장

MMA전적: 25전 23승 2패

PRIDE전적: 10전 10승

경력: "슈토 웰터급 5대 왕자

"프라이드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





강점



* 시간이 갈수록 불붙는 폭발적인 타격력

* 라이트급의 한계를 넘어섰다 불리는 펀치의 파워

* 강력한 펀치 콤비네이션 연타

* 한번도 KO당하지 않은 맷집

* 강한 허리힘, 클린치 싸움



단점



* 스태미너에서 다소 위험한 모습을 보인다

* 후반에 갈경우 태클 방어력 부진

* 지쳤을때 서브미션을 당하기 쉽다





어렸을적 유도가인 아버지 밑에서 유도를 배우며 자란 고미는 자신의 피에 들끓는 혈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유도라는 운동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 레슬링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고미는 격투가의 인생을 살것을 결심, 일본 최고의 명문

도장인 키쿠치 레슬링 도장에서 훈련을 쌓는다.

20살때 슈토 무대에 데뷔, 무려 13연승을 이어가며 고미는 5대 슈토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뒤 노르웨이의 강자 요아킴 한센에게 판정패를 당하며 통산 첫패배를 경험한 고미는 다음

경기에서 치욕적인 모습을 보이며 완벽한 패배를 맞는다.

그 상대는 바로 '천재' 라는 수식어를 늘 붙이고 다니는 B.J펜.

B.J펜에게 완벽히 제압당하며 서브미션(리어네이키드 쵸크) 으로 패배를 당한 고미는 그후

자국의 프라이드 무대에 데뷔한다.

제드손 코스타를 파운딩으로 침몰시키며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친 고미는 두번째로 만난

하우프 그레이시를 단 6초만에 초살시키며 주목을 받는다.

그뒤 파비우 멜로, 찰스바넷, 젠스펄버, 루이스 아제레도 등의 강적을 모두 1R에 물리친 고미는

"KO가 아니면 안된다. 그것도 1R KO여야 한다." 며 강한 자신감을 들어낸다.

그러나 7번째로 만난 진 실바와의 대결에서 고미는 프라이드서 최초로 판정까지 가며 스태미너

라는 약점을 들어낸다.

하지만 그 약점을 안다고해서 고미를 잡는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프라이드 무사도 9회 대회에서 열린 초대 라이트급 GP에서 고미는 카와지리와 아제레도

(2차전)를 잡아내며 결승에 진출, 키쿠치 도장의 과거 선배인 사쿠라이와 결승에서 맞붙는다.

남제 2005에서 벌어진 결승전에서 고미는 하야토를 멋지게 1R 실신 KO시키며 자신이 현 라이트급

최강의 파이터임을 입증, 현재 최고의 상승세를 몰며 일본 최고의 에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

고미 다카노리가 주목받는것은 고미의 골격이나 체격이 미들급에 준한다고 할정도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파워가 다르고 힘이 다르고 맺집이 다르다.

이런 그가 라이트급에서 MMA형의 타격기술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고, 격투센스마저 타고 났으니
프라이드 라이트급 초대 챔피언을 달성하여도 이상할게 없다고나 할까.

고미는 유도와 레슬링을 배운이 답지 않게 타격전을 고수하려 한다. 강한 맺집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그의 압박을 견뎌내는 이는 적지 않다.

과거 BJ펜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할 당시만해도 타격에 제대로 눈뜨기 전이어서 지금과는 양상이
다를것이라 분석된다. 그래서 리벤지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고미다카노리가 슈트복세 아카데미의 자객으로 온 루이스 아제래도를 무참하게 격파 했을때
격투기 매니아들은 고미의 강함을 그때서야 제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해당경기에서 레프리스톱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선수를 추가로 가격하는 비매너를 보임으로써
많은 비난을 사기도 하였으나 반면에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미는 레슬러 출신이기에 갖는 태클의 시도나 방어에 강하나 타격솜씨가 물이 오르면서 오히려
그라운드기술의 진보는 그다지 크게 어필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탑포지션이 아닌
상태에서는 늘 지나치게 방어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알고 많은 경험이 있으며 압도적인 투기와 그만큼 어그레시브한 경기 스타일
과 타고난 격투센스는 당분간 고미다카노리를 제압할 라이트급 선수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10전 10승 무패의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고미다카노리는 일본의 영웅으로써 그치는것이 아니라
동양인 챔피언이라는 값진 결과를 가져온 진짜사나이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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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멤버노트] 고미 다카노리  (0) 200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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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훅

더파이팅/† K-1 : 2005/12/23 13:38
네이버 앤디훅 카페에 올린 글 2005년 11월 30일 11시
.......................................................................

왜 앤디훅인가


가라테 출신으로 챔피언을 이루었고, 많은 좌절끝에 k-1 챔피언이 되었다.


그런 그의 신체조건을 말해보자면 ...... "작다".


일반인기준이 아닌 선수들 기준으로 보면 그의 전성기시절에도 작은편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더욱 작은편에 속한다.


체중도 헤비급이라지만 항시 100키로 를 밑돌았다.


체형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레이세포가 10키로쯤 뺀 정도라고 보면 될것이다.


앤디훅은 가라테를 수련했기 때문일까.


그외 많은 선수들이 신체조건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노력할테지만
앤디훅은 2%모자란 신체조건은 그를 타 선수보다 훨씬 많은 고심을 하게 만들고 더더욱 치열하게 연습하게 하였을 것이다.


가라테에서 활약할 당시의 모습은 그저 소식으로만 전해들었기 때문
에 잘은 모르겠지만 케이원 무대에서의 그의 모습은 한편의 드라마
라 해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그를 보면서 느낀것은 미디어와 대중이 만들어내는 영웅의 이미지와 너무 맞아 떨어진다는것이고, 반면의 앤디훅의 내면은 평범하지 않았나 하는것이다. 약간은 이기적일때도 있고 너무 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중한 부담감에 포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대중앞에서 이름을 드높이는 자들의 숙명일까.


그런 앤디훅은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생을 살았다.


근래 피터아츠의 경기를 보면서 "왜 그가 전설인가" 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종종 볼수 있는데, 그것은 화면에서 보여지는 경기내용속에 녹아 있는 엄청나게 치열한 노력의 흔적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미묘한 기량의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앤디훅이 그런 선수였다. 그의 경기를 보게 되면 힘도 약해 보이고 때로는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앤디훅은 경기내내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시키고 상대의 약점을 읽어내려 끊임없이 흐름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결국 상대는 앤디훅에게 잡혀먹히는 것이다.


같은 수읽기의 달인이며 퍼펙트한 후스트를 돌아 보면 쉽게 알수 있다.


후스트의 체격이 더 좋음에도 후스트는 앤디를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이 후스트가 밴너를 비롯한 현재 최강자들을 모두 챔피언의 문앞에서 죄다 좌절시킨 그야말로 최절정의 기량을 가진자였다.


그보다 파워가 쎄고 복싱을 잘하고 킥을 잘쓰고 체격이 더 커도 종합적인 기량은 항상 후스트가 앞섰으며,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고 지배하는 능력으로 후스트는 수없이 많은 강자들을 좌절시켜왔던 것이다


그런 후스트조차 앤디훅은 어려워 했다.


상대적인것이 선수와 선수간에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어려운 조건하에 치열한 삶을 살며 인생드라마를 엮어낸 앤디훅이야말로 다시는 나타나기 힘든 케이원의 영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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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라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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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은 다양한 경기 방식을 개발하고 확장하여 프라이드및 UFC에 비해 세계화에 한발자국 먼저 다가섰습니다

혹자는 프라이드의 인기가 k-1을 앞질렀다 말하지만 관객수나 방송에서의 위상만 보더라도 아직은 그런 단계는 아니지요.



초창기 k-1의 인기 몰이를 했던 선수는 뭐니 뭐니 해도 앤디훅일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피터 아츠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요.



오늘 논의하고자 하는것은 다양한 경기방식이 혼재하는 현재의 k-1이지만 역시나 WGP는 헤비급 이상의 무제한급
토너먼트이고 앞으로도 변할거 같지는 않은데 이것이 바로 k-1의 장점이자 단점이랄 수 있겠습니다.



초대 챔피언들 중에서 피터아츠가 가장 이상적인 k-1의 챔피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적절한 체격

그의 체격은 과거나 현재나 늘 정상급 선수들이 가진 가장 평균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190 전후를 말합니다.

둘째, 일격

테크닉이 뛰어나도 일격이 없는 선수가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일격이 있으므로 유명한 선수역시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크로캅이나 밴너 정도는 되야 일격으로 이름좀 날리수 있겠조. 프란시스코 휘리오도 있구요.

피터아츠의 하이킥은 정말 예술중에 예술이조. 그의 전성기때 오른발 하이킥은 말그대로 k-1경기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일격입니다.

셋째, 재미

그는 무섭게 전진합니다. 그는 뒷걸음 치는 법이 없습니다. 뛰어난 기술로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가며 무섭게 압박해 드러갑니다.

무사시라는 선수가 비교적 뛰어난 기량임에도 늘 뒷걸음 치고 사이드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의 짜증을 유발시키는것과는

정 반대 입니다. 절정의 기량을 가진 선수의 무서운 전진. 그것은 숨막히는 긴장과 더불어 흥분을 안겨주고 재미를 선사해줍니다.

넷째, 최고의 기량

피터아츠는 이제 나이가 좀 됩니다만 그는 이미 푸릇푸릇한 시절에 기량의 완성을 이룬 사람입니다. k-1첫대회때만 좀 그렇지 다음해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조. 원투펀치가 이어지고 상대방의 가드가 올라가는 순간 반대편 하이킥이 연이어올라가고는 하는데, 이것은 최고의 노력과 더불어 최고의 도장에서 최고의 가르침을 몸으로 익혔다는 뜻일겁니다.



피터아츠 이야기를 한것은 그가 k-1챔피언으로써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선수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장점과 단점에 어떻게 인용될까요.

그와 더불어 최정상을 달리던 선수들을 그와 비교하기 위험입니다.



피터아츠와 더불어 여러차례 우승을 차지한 후스트를 예를 들어 보도록 하조.

후스트의 승리의 베이스는 역시 그의 기량이겠지만, 상대 선수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적응하고 흐름을 읽어내는 그의 수읽기가 그가 가진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k-1의 WGP에서도 가장 위력을 발휘하여 토너먼트에서 동급의 선수들일지라도 적절한 대응으로 모두 어렵지 않게 이기고 올라갑니다.

약점이 없는 선수가 없는데 후스트는 거의 약점이 없다고 봐도 될겁니다. 그만큼 퍼펙하조.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정말 잘 파고급니다.



오늘 크로캅 이야기를 원래 꺼내보려 했는데, 이쯤에서 이야기 하조.

크로캅의 스타일의 천적은 바로 이 후스트인데요. 경기 결과에서도 바로 나타나조. 뛰어난 감각과 뛰어난 방어, 그리고 수싸움에도 능한 크로캅. 거기에 더해 순간에강하여서 위에서 말한 바로 그 "일격" 이 있는 선수조.

그런데, 이 일격이란것은 강한 타격도 타격이지만 상대의호흡을 읽어내는 본능적인 감각이 필요한데, 후스트는 이점에서 거의 최고이기 때문에 크로캅의 일격보다는 후스트의 꾸준한 로우킥이 더 잘 먹히게 됩니다. 다른 선수라면 후스트처럼 편하게 크로캅에게 로우킥을 먹이기 힘들겠조. 후스트니까 가능할겁니다. 다른 선수가 그랬다간 바로 크로캅의 하이킥에 눕어 버릴테조.



그런데, 문제는 크로캅과 더불어 순간에 강한 선수들의 성적이 그다지 크게 좋지는 않다 이겁니다. 무관의 제왕 둘이 모두 그런 케이스조.

레이세포와 제롬르밴너가 바로 후스트와 반대되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양쪽의 조화가 가장 잘된것이 피터아츠구요.



제롬르밴너가 조금만더 피터아츠화 되었다면 이미 두어번이상 챔피언이 되었을 겁니다.

그의 기량과 파워를 합친값은 역대 챔피언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는데도, 아직 무관이니, 이것이 바로 k-1의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밴너와 같은 스타일이 k-1의 인기를 끌어주기에 후스트보다 나을겁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 무관이조. 원매치였다면 상황이 많이 다를겁니다.



즉 선수자체가 토너먼트화 되지 않으며 살아남기 힘든 구조. 그것이 바로 케이원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프라이드로 이적한 크로캅이 후스트에게 진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벽입니다. 실력이 차이라기보다 천적과도 같은 개념일 겁니다. 후스트를 이긴 어느 선두도 크로캅에게 장담하지 못할겁니다.

그런 강자조차도 후스트에게 밀렸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리는 것이 격투기의 상대성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후스트가 크로캅에게는 그런 경우였던 겁니다.



무사시가 WGP그랑프리 결승전에 올라가는것을 보면 좀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요?

레이세포가 뒤즌게 스킬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래도역시 몇년이 지났습니다. 30살 이후로 그의 기량은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조

올해로 그의 나이가 35살입니다. 몇년동안 계속 물먹은겁니다. 올해 아니면 체력적인 문제로 앞으로는 좀 힘들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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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라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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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딴지격투전문우원 토끼대장님.

K-1, Pride, KOTC와 같은 이종격투전이 뻔질나게 방송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실로 본 필자가 바라고도 바라던 세상이 되었고 강남 한가운데 빌딩을 사서 1층은 태권도, 2층은 무에타이, 3층은 극진카라테... 요런 지랄 발랄한 필자의 꿈도 이제는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되고 있는 이 때에 무심코 생각나는 불세출의 파이터가 한 명있으니 그가 바로 오늘날의 K-1을 있게 한 장본인 중의 하나인 안디∼∼∼ 훅∼∼ 인 것이다.

지난 딴지 96호에 뺑아리 눈물만큼 잠시 소개되었던 앤디 훅. K-1에는 지금도 잘나가는 걸출한 어빠야들이 즐비하건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K-1 팬들이 앤디 훅의 옛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음이다.

은퇴한 뒤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수시로 말했을 만큼 개인적으로 쪼가 자신 있게 생각했던 마스크라던가 한때 K-1의 잘나가는 파이터로서 킥복싱-무에타이 선수들도 출전하지만 일단 킥복싱이라고 통칭하겠다-의 전유물이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던 K-1의 링에 홀연히 나타나 카라테의 수호신으로서 당당히 군림해왔던 뛰어난 실력도 그의 인기비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여전히 앤디 훅에 대한 진한 기억을 대갈통 속에 박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단지 그가 쫌 생긴 파이터여서 그리고 쫌하는 파이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부터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살이를 훔쳐보며 오늘날의 K-1을 있게 한 장본인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살펴보자.


파이터의 피가 흘렀다??

앤디 훅은 스위스 출신이다. 다민족국가 스위스의 터줏대감은 켈트족의 한 분파인 헬베티아족으로 천성이 용맹하고 사나웠다고 한다(진짠지는 그때 안 살아봐서 모르겠다). 약 2000년 전 이미 지금과 거의 흡사한 국경을 가지고 있던 스위스는 한때 스위스용병이라는 수출품(?)으로 명성이 높았더랬다.

스위스용병의 피가 흘렀기 때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앤디 훅의 아버지 역시 용병이었다고 한다. 앤디 훅의 양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부친과 모친 모두 그가 아주 어릴 적에 행방불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할매, 할배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가끔씩 앤디 훅의 출생에 대한 예를 들며 앤디 훅의 몸 속에 흐르는 헬베티아족의 피가 그를 전형적인 파이터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부분은 지나친 과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앤디 훅 외에는 아직 이렇다할 스위스 출신 파이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극진가라테로 빛보다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가던 어린 앤디는 낙엽이 왕창 떨어진 가로수 밑에 거적 깔고 앉아 있는 한 도사를 만났다. 그 도사는 앤디의 비범한 용모에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 다음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 주먹으로 먹고살끼다"

이것이 바로 앤디 훅이 무도의 세계로 뛰어든 계기가 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암튼 앤디 훅은 십대 초반 극진카라테에 입문하게 되었고 열아홉 되던 해 비행기 타고 일본까지 날라와 카라테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첫 출전한 제3회 극진카라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앤디 훅. 승승장구하던 앤디 훅은 아쉽게도 16강전에서 현 마쓰이파 극진카라테 총수인 마쓰이 쇼케이(한국명 문장규)를 만나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4년 후인 제4회 세계선수권에서 앤디 훅은 또다시 승승장구하며 이번에는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그때도 하필 상대가 전 대회에서 자신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마쓰이 쇼케이가 아니던가.

앤디는 이번에도 아쉽게 연장 2회전에서 마쓰이의 안면을 주먹으로 쌔려버리는 반칙을 범해 감점을 받고 패하게 되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음이다. 만약 그때 앤디 훅이 얼굴 안 때리고 그저 잘 싸워서 이겼더라면 외국인 최초의 세계선수권자라는 명성을 프랜시스코 휘리오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암튼 앤디 훅은 외국인으로는 처음 극진카라테 세계선수권 결승에 진출하는 성적을 얻으며 제4회 세계선수권을 기점으로 세계무술판에 쪼그만한 명함 하나를 들이밀게 되었고 프랜시스코 휘리오라는 또 다른 걸물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극진카라테 외국인 짱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정도회관으로 가다


앤디 훅은 91년 은퇴를 선언한 뒤 정도회관으로 옮겨가게 된다. 앤디 훅이 극진회관을 버리고 정도회관으로 옮겨가게 된 것은 제5회 세계선수권에서의 판정이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건은 제5회 세계선수권에서 벌어진 앤디 훅 VS 프랜시스코 휘리오전에서 일어났다. 두 선수 모두 극진카라테에서도 알아주는 거물급 선수였으며 당시의 경기는 2번의 연장전까지 가는 혈전이었다.


사건은 문제의 2번째 연장전에서 벌어졌다. 주심의 중지사인이 난 직후(혹은 동시에) 프랜시스코 휘리오는 소도 때려잡을 쇠몽둥이 같은 그의 다리를 들어 앤디 훅의 얼굴을 향해 발질을 시도하였고 '아 중지구나. 쫌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던(?) 앤디는 여지 없이 안면을 구타 당해 고대로 꼬꾸라져 버린 것이다.

경기는 프랜시스코 휘리오의 승리로 끝났고 앤디측에서는 중지사인 후의 공격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을 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도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불세출의 무도가 최배달 아저씨가 "항시준비, 철저대비"와 같은 무도의 정신을 내세우며 여지없이 말을 씹어 부렀다. 멈추라는 말을 듣고 방심하여 얻어맞는다는 것은 공수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최배달 선생님의 말씀이다.

이 글을 읽고 문득 생각이 날 것이다. 코믹스 격투왕 맹호(요즘은 그레플러 바키로 나오더라)에 이러한 장면이 있었음을. 그것은 작가가 기냥 재미로 써놓은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그 가운데 하나가 앤디 훅과 프랜시스코 휘리오의 대결이다.

제4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던 91년 앤디 훅은 은퇴를 선언하게 되고 후에 정도회관으로 스카웃(?)되어 간다. 그러나 앤디 훅의 정도회관 이적은 프랜시스코 휘리오전에서의 판정에 대한 불만에 의한 반발심리가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정한 이유는 앤디 훅 본인밖에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앤디 훅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


K-1 링에서 작살나기 시작하다!

앤디 훅이 처음 K-1 링에 서게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93년에는 토너먼트전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원매치전에 참가했었고 토너먼트전에 참가한 것은 94년부터의 일이다.

94년초 K-1 초대 우승자인 크로아티아의 브랑코 시카틱을 작살낸 앤디 훅은 카라테 최초의 K-1 우승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되었지만 어깨에 짐이 너무 무거웠던가보다.

이후 94년 K-1 그랑프리에 출전해 패트릭 스미스에게 단 19초만에 개박살나는 망신을 당한 것. 이때의 경기를 두고 일각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한다.

"원래 카라테경기에서는 맞아 터져 자빠졌을 때 발딱 안 일어나면 패배하게 된다. 때문에 앤디 훅도 KO 당하고 나서 발딱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패인이다. 원래는 심판의 카운트를 보면서 10카운트 다 되어갈 때까지 기다리며 정신을 차렸어야 했을 것을..."

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카라테의 시각에서 본 것일 뿐 아무리 카라테가 몸에 익었다 할지라도 링에서의 경기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숙지하지 못했던 앤디 훅의 실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94년 앤디 훅이 경악의 패배를 당한 후 K-1 최초의 카라테 우승이라는 짐은 정도회관의 동료 사타케 마사아키에게 옮겨졌지만 사타케 역시 결승전에서 제왕 피터 아츠의 어뢰를 맞고 꼬로록 격침되었다.

역대 K-1 선수 가운데 일본인으로서 K-1 결승까지 진출한 것은 94년 사타케 마사아키가 유일하다. 참고로 사타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만화방에 가서 '우리의 격투왕'이나 '격투왕 강호'를 빌려보시기 바란다. K-1 93, 94 전후의 사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주인공은 사타케다.
95년에는 훗날의 친우인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마이크 베르나르도의 번쩍이는 머리를 이용한 시선방해작전이 있었던지 암튼 여지없이 개박살났다.

같은 해 앤디 훅은 또 다른 거물과 맞붙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4번의 K-1 우승에 빛나는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호스트였던 것이다. 마이크 베르나르도전처럼 개박살나지는 않았지만 역시 앤디 훅의 패배.
꾸준히 엘리트코스만 밟아왔던 앤디 훅에게 있어 94, 95년은 최대의 암흑기였으며 당시 앤디 그에게 쏟아진 원성도 적지 않았다.

가라테 수호신의 탄생!

96년 앤디 훅은 카라테맨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K-1에서 우승하게 된다.

96년 앤디 훅은 K-1 그랑프리 준결승에서 스스로 "가장 힘들었던 경기"라고 말했던 어네트스 호스트와 경기를 펼치게 된다. 당시의 경기는 재연장까지 가는 승부였다.

필자 역시 K-1 팬들을 대상으로 한 Best Bout 투표에서 두 번째 베스트매치로 이 경기를 뽑았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K-1 최고의 경기는 95년도에 있었던 제롬 레 배너와 녹비드 데비의 경기이며 참고로 K-1 팬들이 선정한 최고의 경기는 2000년 피터 아츠와 제롬 레 배너의 경기되겠다. 제롬이 머리통에 피터 아츠의 발차기 직격을 맞고도 홀연히 일어나 야수처럼 달려들어 피터를 격침시켰던 그 경기 말이다.

96년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당시까지 앤디 훅이 단 한차례도 이겨보지 못했던 마이크 베르나르도. 96년 마이크 베르나르도는 제왕 피터 아츠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당시 마이크 베르나르도는 피터 아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지 연방 하늘을 보면서 두 팔을 벌리더구먼.

앤디 훅의 팬들 가운데는 96년 결승전을 K-1 최고의 경기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아마도 96년 결승전에서 앤디 훅이 자신의 가장 화려한 피니쉬기술 즉 훅토네이도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96년 K-1의 우승으로 앤디 훅은 '카라테 수호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이후 97, 98년 K-1에서도 결승에 진출하였다. 앤디 훅을 매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지금도 "3회연속 결승진출은 앤디 훅뿐이다"며 앤디 훅을 추켜세우기도 한다.

96, 97, 98년의 3년 간이 앤디 훅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성기였다.

참고로 96년 앤디 훅이 K-1에서 우승할 당시 앤디 훅의 격투스타일이 약간 변화되었다. 과거 발차기에 큰 비중을 두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펀치 수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몇몇 전문가들은 발차기 위주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양한 펀치기술을 사용하는 스타일로의 전향이 96년 우승의 비결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광에 묻혀 떠나다..

앤디 훅은 2000년 8월 24일 전골수성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1964년 9월 7일생이니 36살의 생일을 2주일 남기고 영원히 링을 떠난 것이다.
앤디 훅의 장례식은 일본에서 한 번 그리고 스위스에서 또 한번 치러졌는데 일본에서의 장례식에는 1만 2000명이라는 조문객이 몰려들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언론들은 앤디 훅의 장례식을 가리켜 "역대 스뽀오츠 스타의 장례식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었다.

앤디 훅의 사망 후 K-1측에서는 외아들의 학자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으며 Andy hug Memorial(제목은 바뀔 때가 많지만)이라는 대회를 신설하여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앤디 훅이 사망하던 날 조국 스위스에서는 대통령 긴급성명으로 앤디 훅의 사망소식이 발표되었으며 조국에서 치러진 두 번째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취리히 시장이 장례식을 직접 주관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 어떤 무도가도 죽는 순간 이만한 명예를 얻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앤디 훅이 단순히 강한 파이터였다면 죽는 순간까지 이토록 명예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앤디 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파이터 경력보다 그의 인간미에 많은 사람들이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앤디 훅은 조국 스위스에서 작은 의료기기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사업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세계적인 파이터로 명성을 얻으며 부를 축적하였지만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며 예절바르게 행동하였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또 다른 스위스의 스뽀오츠 스타 마르티나 힝기스와 비견되기도 하였다. 물론 힝기스는 자린고비, 앤디 훅은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비교된다.
실제로 많은 스위스인들이 앤디 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스위스에서 앤디 훅의 경기가 열리면 시청률이 50%를 넘어서기도 하였다고 한다.

앤디 훅은 자신이 사망하기 얼마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 이로나와의 이혼을 무효로 돌리라는 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두고 죽음을 직감한 앤디 훅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선물(재산분배)이었다고 말한다.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며 예절바르게 행동했던 앤디 훅. 서양인이면서도 가장 동양적인 무술스타일을 고집했던, 동양인보다 더 동양인에 가까웠던 사람이 바로 앤디 훅이다. 그는 완성된 파이터이기 이전에 이미 완성된 인간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피터 아츠, 어네스트 호스트와 함께 K-1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장본인.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는 별명답게 가장 동양적인 서양인 파이터였던 남자. 수많은 K-1 파이터들 가운데 무도가의 영혼, 무도가의 투혼과 같은 이상적인 말들이 가장 어울리는 남자. 영혼으로 싸우는 무도가. 그가 바로 앤디 훅이다.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앤디 훅의 사망 후 필자는 개인적으로 앤디 훅의 추모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앤디 훅의 팬들이 방명록에 조문의 글을 남겼더랬었다. 그 가운데 앤디 훅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글이 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하겠다.


"다시 태어나도 무도가로 태어날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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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라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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