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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8 팝스토리 첫번째 - 데비깁슨 by 미라파샤
  2. 2007/05/16 고토마키 Goto maki - 그녀의 베스트 by 미라파샤

Debbie Gibson / 데비 깁슨
데뷔 :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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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깁슨의 1집 앨번 자켓이미지다

마음먹고 팝 이야기를 적어 보려는데, 첫번째로 떠오르는건 역시 데비깁슨이었다.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는중 그녀에 대한 자료가 너무도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데비깁슨 그녀는 보통의 인기스타가 아니라 미국과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슈퍼스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내게 참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쩔 수 있나. 그나마 있는 자료도 전부 링크가 막혀 있어서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올릴 수 밖에..

처음 데비깁슨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6학년에서 중학교1학년으로 올라가더 그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게는 6살위의 형이 있는데, 같은 방을 쓰는 관계로 데비깁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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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귀여법

그녀는 특별했다. 당시 그녀는 어린 내게 환상이었다. 내가 중학생 시절 가장 즐겨들었던 앨범을 모두 꼽으라면 놓칠 수 없는 가장 최초의 음반이 그녀의 1,2집일 것이다.

스스로 자작곡을 하는 그녀는 천재로 알려졋고, 뛰어난 외모로 사랑 받았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보여주며 정말 말그대로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처음 음반을 직접 구매하게 된건 그녀가 아니었지만. (카펜터스와 사이먼앵가펑클이 처음이다)

뭐랄까 그녀의 인기를 당시에 청소년이었거나 팝을 즐겨 들었던 이가 아니라면 실감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인기는 그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미국과 세계각국의 반응에 비해 비교적 뜨겁다고 할 수 있는것이어서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쉽기만 하다.

1집의 큰 성공 이어서 2집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더 성숙해지고 더욱더 완성도 높게 나왔기에 지금도 2집을 더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집만큼의 큰 성공은 아니었다. 2집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지만 그녀의 음악은 아직도...아니 평생 잊지 못할듯 하다.

billboard singles chart

1987 - No.4 - Shake Your Love
1987 - No.4 - Only In My Dreams
1988 - No.22 - Staying Together
1988 - No.3 - Out Of The Blue
1988 - 2Weeks No.1 - Foolish Beat
1989 - No.71 - We Could Be Together
1989 - No.17 -No More Rhyme
1989 - 3Weeks No.1 - Lost In Your Eyes
1989 - No.11 - Electric Youth
1991 - No.26 - Anything Is Possible
1993 - No.86 Losin Myself



데뷔곡이었던 쉐이크유어핸드부터 좋았다.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 외에도 앨범의 전곡이 모두 좋았다.

물론 지금도 인기 있는 아웃오브더블루나 러스트인유어라이즈도 다 좋다.

데뷔당시 17살의 틴에이저였던 풍부하고 음량과 깔끔한 목소리로 뭇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6살에는 "Make sure you know your classroom" 이라는 곡과, 12살엔 "I come from America" 라는 곡을 썼다.

자료를 찾다 알게된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 현재는 데비깁슨이 아니라 데보라깁슨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한국에서만큼은 만이 잊혀진 상태인듯 하다 .그러나 그녀가 하이틴이던 시절 동시대의 하이틴들은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Lost In Your Eyes 이다. 그녀의 최고히트곡중 하나. 지금들어도 상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Out Of The Blue 이다. 역시 최고 히트곡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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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귀엽다.^^; 그녀의 인기는 이런 외모가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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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라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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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마키는 모닝구무스메의 3기멤버였다.

원년멤버 5인 모두 스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 돋보이는것은 아베나츠미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가질만한 그룹도 아니었고, 그룹의 색깔도 지금과는 판이했다.

그때 등장한 고토마키, 3기로 혼자 덜썩 들어와서는 모든 인기를 독차지 한다.

원년부터 현재까지 모닝구무스메 와 하로프로젝트의 중추이자 리더는 역시 아베나츠미겠지만

그 꽃은 단연 고토마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이라는것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뛰어난 가창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기만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고, 풍부한 성량은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운것.

국내 댄스가수라고 내세우는 이들의 가창력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로지 기교?

하기사 아이돌에게 가창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타고난 매력적이거나 독특한 목소리가 있긴 하지.

고토마키의 경우에는 아이돌치고는 꽤나 하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아이돌일뿐.

그러나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와 더불어 뛰어난 외모, 그리고 단연 한 몸매도 한다.

여러모로 종합적으로 보았을때 단연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


모닝구무스메를 조직하고 육성하는 프로듀서 층쿠는 완전한 멤버를 원하지 않는 듯 싶다.

즉 솔로로서도 충분히 통할 만큼의 외모와 가창력을 포함한 스타성을 모두 가진 멤버를 모닝구에 잘 넣지 않는다.

대개는 스타성이 있긴 하되 한두군데 보완해야할만한 멤버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그런가 층쿠는 단독 솔로 여가수를 잘 키우지 않는다. 뭐 작사작곡 하느라 힘든것도 있고 여러모로 고려해야할 일이 있겠지만 말이다.

여튼 마츠우라 아야 및 후지모토 미키 최근에 등장한 코하루 등  몇되지 않는 솔로 여가수

이들의 특징은 뭐 별거 있는게 아니다. 혼자 내보내도 충분히 한곡을 소화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을만한 그리고 결과적으로 스타성이 충분한가 하는 점.

고토마키는 모닝구무스메에서 활약하는 기간동안 단연 톱이었다.

모닝구무스메의 히트곡중 오리지널 버전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정말 다수의 멤버들은 어느 한곡에서 자기만의 파트가 얼마되지를 못한다. 때로는 안스러울때도 있다.

그런데 고토마키와 아베나츠미는 유독 많은 파트를 차지한다. 물론 고토마키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물론 아베나츠미를 위한 모닝구라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사실 일본의 토크쇼에 자주 등장하는 모닝구무스메를 보다보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아베나츠미를 편애하는지를 얼추 짐작가능했었다. 그런데 고토마키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지.

뮤직 비디오를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고토마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듯 모닝구무스메를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이끈 꽃중의 꽃은 그룹활동할 때에도 솔로를 병행햇다. 층쿠의 편애를 알 수 있다. 물론 충분한 스타성이 있으므로 투자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멤버들은 어느 한곡에서 메인한번 차지해보기 어려운것이 사실이었고, 겨우 유닛을 따로 조합하여 활약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토마키와 매우 상반되는 경우가 바로 후지모토 미키인데, 그녀는 솔로로 데뷔하여 활약하였다. 물론 충분한 스타성과 더불어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츠우라아야에 비해 인기는 좀 덜했던거 같다. 여튼 마츠우라 아야는 계속해서 솔로곡을 내놓고 댄스와 발라드를 모두 섭렵하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왔던 것과는 달리 후지모토미키, 즉 미키티는 오히려 솔로를 임시 휴업하고 모닝구무스메 멤버로 들어가 드디어 올해는 리더가 되기도 한다.

애칭으로..

곳찡과 미키티는 모닝구무스메의 역사를 대변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입하고 졸업하는 아침의딸들은 자기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활동 내내 고민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경쟁에서 으뜸이었던 고토마키조차도 졸업한 이후 과거의 같은 인기는 아닌듯하다.

물론 지금의 모닝구무스메 멤버들중 솔로 데뷔조차 가능해보이는 멤버가 그다지 없다는거소가 대비해 생각해보면 역시 으뜸이었던 고토마키니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 모닝구무스메는 그 존재 자체가 히트였던거 같다. 국내팬들의 경우에는 좋아 하는 멤버가 졸업을 하게 되면 금새 팬으로의 입장을 접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듀서 층쿠가 지향하는 바는 모닝구무스메라는 시스템과 넓게는 하로프로젝트 자체가 브랜드화 되어 그 자체를 좋아 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있다고 이해해야 할 듯 싶다.

모닝구무스메는 일본 연예산업의 첨단을 말해주고 있다. 모든 멤버는 차례대로 사진집을 내고, (때론 졸업할때까지 단한번의 기회를 얻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수도 없이 내는 아베나츠미 같은 경우도 있긴 하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성공가능성은 적을지라도 솔로로 자기만의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스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모닝구무스메와 같은 스타시스템 아래서 성장하며 그 존재를 돋보기에 노력할 것인가.

모닝구무스메는 결과가 이미 내정되 있다. 항상 중심에 있던 아베나츠미조차 졸업이후로 그 빛이 퇴색되어 보이며, 오로지 고토마키만이 그 인기가 여전한듯 싶은 현 상황. 그것은 모닝구무스메라는 이름안에 있을때와 그렇지 못한때로 나뉘어지며, 그 안타까운 결과를 보완해주는 하로프로젝트라는 층쿠사단 조차도 그다지 위안이 되어 보이진 않으니까.

고토마키가 한국에 와서 한국어 버전으로 부른 スッピンと淚 Suppin to Namida 라는 곡을 들으면서 문뜩 떠오른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뭐 아이돌은 역시 아이돌일뿐이겠지만, 한동안 모닝구의 음악을 좋아하고 들었던 입장에서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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